이번에 히로시마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여행을 맛있는 술을 먹기 위해 갈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데요,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케(일본주) 생산지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일본 3대 사케 마을"로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는 효고현의 나다(灘), 교토부의 후시미(伏見), 히로시마현의 사이조(西条)입니다. 각 지역은 기후, 수질, 쌀의 품질, 전통적인 양조 기술 등에서 독특한 특징을 가지며, 일본주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효고현 나다(灘) - 일본 최대의 사케 생산지
1. 나다 사케의 역사와 발전
나다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사케 생산지로, 에도 시대(1603~1868)부터 양조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에도(현 도쿄)로 사케를 운반하는 기타마에부네(北前船, 북전선)라는 무역선 덕분에 번성했습니다. 나다에서 생산된 사케는 품질이 뛰어나 '에도의 술'로 알려졌고, 일본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2. 나다 사케의 특징
나다의 사케는 일반적으로 드라이한 맛과 깔끔한 뒷맛을 가지며, 강한 감칠맛이 특징입니다. 이는 나다 지역의 물과 기후 때문입니다.
미야미즈(宮水, 미야의 물)
나다의 사케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미야미즈'라는 특수한 물 덕분입니다. 이 물은 미네랄이 풍부하여 발효 과정을 촉진하고 사케에 깊은 감칠맛을 더합니다.
한슈 남부의 온난한 기후
온난한 기후 덕분에 겨울철 양조에 유리하며, 특히 사케 양조에 적합한 쌀 품종인 **야마다니시키(山田錦)**가 풍부하게 재배됩니다.
도지가(杜氏, 사케 장인) 문화
나다에서는 일본 최고 수준의 양조 장인인 '탄바 도지(丹波杜氏)'가 활동하며, 그들의 기술이 나다 사케의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3. 주요 양조장
하쿠쓰루(白鶴) / (고베시 히가시 나다고)
겟케이칸(月桂冠) / (니시노미야시)
쿠보타(久保田) / (고베시 나다구)
나다는 지금도 일본 사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며, 일본 최대의 사케 생산지로서 전통과 혁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토부 후시미(伏見) - 부드럽고 우아한 사케의 고향
1. 후시미 사케의 역사
후시미는 일본 천 년의 수도였던 교토의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헤이안 시대부터 술 양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막부의 정치적 중심지였던 교토와 오사카로 사케를 공급하며 발전했습니다.
2. 후시미 사케의 특징
후시미의 사케는 일반적으로 부드럽고 섬세하며, 은은한 단맛이 특징입니다. 이는 후시미의 독특한 수질 덕분입니다.
후시미의 명수(伏水, 복수)
'후시미'라는 이름 자체가 '복수(伏水)'에서 유래했을 만큼, 이 지역은 부드러운 연수(軟水)가 풍부합니다. 연수는 천천히 발효되며 섬세한 향과 맛을 가진 사케를 만들어냅니다.
우아한 풍미와 감칠맛
나다의 사케가 강하고 드라이한 맛을 가진다면, 후시미 사케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풍미를 자랑합니다. 부드러운 단맛과 은은한 향이 매력적입니다.
3. 주요 양조장
겟케이칸(月桂冠)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케 브랜드 중 하나. 전통적인 사케 제조법과 현대적인 기술을 결합하여 다양한 사케를 생산. 미국에도 양조장이 있으며 해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기쿠마사무네(黄桜) / 사케뿐만 아니라 일본 맥주도 생산하는 독특한 양조장. 귀여운 애니메이션 캐릭터(노란색 오니)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유명.
킨시 마사무네(キンシ正宗) / 후시미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하는 양조장. 부드럽고 섬세한 맛으로 요리와 잘 어울리는 스타일.
츠키노카츠라(月の桂) / 일본 최초의 니고리자케(にごり酒, 탁주)를 만든 양조장. 전통적인 양조 기법을 고수하며, 손으로 직접 빚는 수제 사케가 많음.
에이쇼마사무네(英勲) / 교토산 쌀과 후시미의 부드러운 물을 사용하여 깊은 감칠맛을 가진 사케를 만듦. 일본 국내외의 사케 품평회에서 다수 수상.
히로시마현 사이조(西条) - 일본 최고의 긴죠(吟醸) 사케 생산지
1. 사이조 사케의 역사
사이조는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에 위치한 사케 마을로, 메이지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히로시마 출신의 미야자키 소우베이(宮崎安兵衛)라는 인물이 연수를 활용한 긴죠 사케 양조법을 개발하면서, 사이조는 일본 최고의 긴죠 사케 생산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2. 사이조 사케의 특징
사이조의 사케는 일반적으로 화려한 향과 섬세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긴죠(吟醸) 계열의 사케에서 두드러집니다.
부드러운 연수와 긴죠 사케
사이조의 물은 미네랄 함량이 낮은 연수로, 부드러운 맛과 깔끔한 뒷맛을 가진 사케를 만듭니다.
낮은 온도에서 장기간 발효
사이조의 긴죠 사케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되며, 복합적인 향과 섬세한 맛을 형성합니다.
과일 같은 아로마와 부드러운 질감
나다의 사케가 드라이하고 후시미가 부드러운 단맛을 가진다면, 사이조의 사케는 화려한 향과 과일 같은 아로마를 자랑합니다.
3. 주요 양조장
카모츠루(賀茂鶴) / 히로시마 사케의 대표 브랜드. 1873년 설립된 다이긴조 사케의 선구자. 전시장 내부가 넓고 다른 양조장에 비해 구경할 게 많음.
후쿠비진(福美人) / 전통적인 긴죠 사케로 유명. 전국적으로 많은 사케 명인을 배출.
사이조주조(西条酒造) / 애도 시대의 덴포 시대에 만들어진 우물에서 퍼 올린 물과, 히로시마의 사케 명인들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전통기술을 사용.
키레이 / 히로시마의 달콤한 사케에 대항하는 드라이한 사케. 시즌 별로 한정판매 사케를 판매.
평일은 문 닫는 양조장이 많으며 특히 월요일은 관광안내소조차 문을 닫습니다. 대부분 16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은 영업하지 않는 양조장도 많으니 사이조 사케 마을 방문 계획이 있다면 이왕이면 금요일이나 토요일 방문을 추천합니다.
사이조는 매년 10월에 사이조 사케 축제(西条酒まつり)를 열며, 전국에서 수많은 사케 애호가들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다, 후시미, 사이조는 각각 독특한 특징을 가진 일본 3대 사케 마을로, 일본 사케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나다: 강한 감칠맛과 드라이한 맛 (경수)
후시미: 부드럽고 우아한 단맛 (연수)
사이조: 화려한 향과 섬세한 긴죠 사케 (연수)
이 세 지역을 방문하면 다양한 스타일의 사케를 직접 맛볼 수 있으며, 전통적인 사케 양조 문화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